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퀘벡 독립운동 (문단 편집) === 두 번의 국민투표 === [[20세기]] 들어서도 퀘벡의 [[독립]] 열기가 꺼지지 않자 결국 두 차례, 퀘벡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퀘벡 독립 여부에 대한 총투표가 실시되었다. 찬성표가 과반수를 넘으면 주에서 나라로 격상될 수 있고, 시민들의 국가 이름이 바뀌고, 여권이 바뀌고, 법이 바뀌고 관세가 바뀌고 아주 온 세상이 다 바뀔 수도 있는 아주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였으므로 이 시기 전국민의 최대 관심사였다. 1980년 5월 20일, 퀘벡의 캐나다 연방 탈퇴 및 입법권, 징세권, 외교권 등 국가로서의 주권 획득을 골자로 하는 분리 독립에 대한 투표가 실시되었고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 연방 탈퇴 반대: 2187991 (59.56%) * 연방 탈퇴 찬성: 1485851 (40.44%) 같은 날 저녁, [[퀘벡당]]의 창시자이자 당시 퀘벡 주총리였던 르네 레베크(René Lévesque)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긴다. >Si je vous ai bien compris, vous êtes en train de nous dire à la prochaine fois! >'제가 여러분 말씀을 제대로 이해한 거라면, 여러분은 지금 저희에게 '다음에 또 봅시다!'라고 말하고 계시는 것이군요. 그리고 이 예언(?)은 실현되어, [[1995년]] 다시 한번 주민투표가 실행되었다. [[프랑스]]와 [[영국]]은 이 일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또한 당시 [[캐나다]]의 총리이던 [[캐나다 자유당|자유당]] 소속 장 크레티앵은 [[퀘벡]] 주 몬트리올 지역구 출신이기 때문에, 퀘벡이 독립하게 되더라도 크레티앵이 캐나다의 총리로 남게 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도 오갔다. 약 67%가 독립을 반대하리라는 초기 설문 결과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불과 약 '''1%'''이라는 놀랄만큼 근소한 차이로 무산되었다. * 연방 탈퇴 반대: 2362648 (50.58%) * 연방 탈퇴 찬성: 2308360 (49.42%) 두 번째 투표에서 더 높은 찬성률이 나왔다는 것이 특기할 만하다. 첫번째 투표에서는 분리를 지지하는 퀘벡인들도 분리 독립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는 분석이 많았다. 그리고 1982년의 새로운 헌법 제정 당시 퀘벡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이 안 되었다는 분노감, 이후 개헌을 위한 미치 호수 협정(1987)이나 샬럿타운 협정(1992)이 둘 다 무산되었다는 점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1982년 당시 자유당에 대한 퀘벡인들의 분노는 대단해서 1980년 연방선거 당시 '''75석 중 1석'''만을 차지하고 있던 [[캐나다 진보보수당|진보보수당]]이 1984년 선거에서는 무려 58석, 1988년 선거에서는 '''63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퀘벡에서 진보보수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한 것은 진보보수당의 1917년 강제징용 사건 이후 처음. 물론 진보보수당도 개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자 1993년 선거 땐 다시 1석으로 대패(...)하게 되고, [[퀘벡 블록]]이 54석을 차지하게 되어 일개 주의 정당이, 캐나다 연방 전체 내 제1야당으로 등극하게 된 분위기 아래서 두번째 분리 독립 투표가 행해졌던 것이다. 지금도 대표적인 주권파 일간지인 르 드부아르(Le Devoir)는 퀘벡 주경일마다 독립이나 세 번째 독립 투표 가능성을 공론화하려 시도하긴 한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선진국 사회의 민족주의 열기는 많이 수그러들었고, 전국 차원에서 캐나다에 다른 지역 이주민들이 늘면서 퀘벡인이 받는 차별도 과거에 비해선 꽤 줄어들었음을 고려하면, 세번째 투표가 실시될 확률은 현재로선 적다고 볼 수 있다. 현재 30대 이하의 청년세대 퀘벡인들은 지난 20세기의 아버지, 조부 세대처럼 영어주들과 연방으로부터 노골적인 차별을 받던 시대를 겪지 않았기 때문에 영어권 캐나다에 대한 적대감이 옅어졌다. 두번의 독립투표를 거치면서 --무려 49% 찬성까지 나온 걸 보고 충격을 받은-- 연방 정부로부터 복지 및 공공일자리 재정 지원금과 자치권한 전반이 확대된 지금 시점에서 볼땐 연방정부의 주(Province)로써 잔류해도 퀘벡인으로써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불어문명 퀘벡의 언어적 자주성을 법적으로 지킬 수 있는데 왜 굳이 경제적 파멸을 각오하고 독립까지 할 필요가 있냐는 현실적 냉소가 강하다. 2014년 퀘벡 주의회 선거에서 독립주의 성격이 강한 당인 [[퀘벡당]](Parti Quebecois)이 독립을 공개 표방하다가 결국 의석을 24석이나 더 잃고, 반독립주의적인 [[퀘벡 자유당]]이 압승하였다. 현재 주 집권정당인 [[퀘벡미래연합]]도 퀘벡 독립에 부정적이다. 독립은 무산되었지만, 지금도 대부분의 퀘벡인들은 '캐나다인'이라는 정체성을 영어권 캐나다인들만큼 가지고 있진 않으며, 경제/정치 등의 실리적인 이유로 다른 영어권 주와 연방 내에 동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다른 캐나다인들도 퀘벡 주를 같은 지붕 아래 살고 있지만 거의 '다른 사회' 쯤으로 취급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